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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론, 안충국 개인전, 〈잇다/LINE_근원과 경계에 서다〉, 2025. 6. 20 – 7. 6,

 

생성과 진화, 폭넓은 지향을 품은 화면

 

이주희 미술평론가

 

  안충국의 작업에서 처음 느껴졌던 것은 화면이 지닌 운동성과 지향성이었다. 운동성은 작품 전반에 역동적이진 않지만 뚜렷했고 나아감과 물러섬이 공존하는 신중한 화면이란 인상이었다. 그의 작업은 어떤 곳은 느리고 섬세하게 그리고 어떤 곳은 무심히 표현 하다가도 부식과 시멘트의 양생으로 생성과 소멸이 뒤섞인 존재의 양상을 목격할 수 있는 다원적인 화면이었다. 캔버스 위에 조경을 해 나가듯 외현을 말끔히 만들어 나간다기 보다 퇴적층을 단단하게 쌓아가며 떠오르는 우연이자 필연의 이미지들을 가꾸어 나가고 있었다.

  이번 전시 〈잇다/LINE_근원과 경계에 서다〉전에 출품된 30여 점의 작품들은 2019-2025년에 제작된 것이다. 안충국 작가의 나이가 30대 초반임을 감안 할 때 청년기의 상당 시간이 반영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종종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몇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해석의 과정에 몰두하거나 탐미적이거나 유미적인 영역으로 나아가거나 하는 경향들이 그것이다. 안충국 작가는 이중 전자인 자신이 감각한 세계에 대한 인식과 확장 나아가 그것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해석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글의 초반부에 언급한 작가의 화면에서 느껴지는 지향성은 이같은 이유에서 느껴지는 것일 텐데, 작가는 세계로 나아가 감각하고 세계 속의 자신이 지닌 방향성에 대한 물음과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인간의 정신과 신체가 지닌 지향성, 그 끊이지 않는 존재 물음의 내적동기가 작가의 화면에 하나의 지향성으로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작가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흐름이 융화된 것이다. 특별한 시간을 보낸 작가가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며 그 시기의 자신에겐 부정적 개념이 부재했음을 이야기하는 담담함은 인상적이었다. 인식과 해석에 따라 특별과 특수, 긍정과 부정을 오갈 수 있는 현실을 지나 현재에 이른 작가이다. 그런 그가 ‘잇다’라는 동사로 자신의 시간과 삶을 맞대어 붙이고 살갗에 닿던 촉각을 조형언어로 풀어냈다. 작가의 작업 전반에 사용되는 시멘트는 그가 건설 현장에서 만난 미디엄으로 다층위의 문명을 투사하는 질료이다. 또한 작가의 화면에서 독특한 질감과 표현으로 변화하는 메쉬(mesh)는 공사 현장에서 질료 간의 이음과 접착을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두 가지 모두 태생 자체와 본질이 귀하고 값비싼 원석이기보단 현대사회에서 활용과 가공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미디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의 전반을 이루는 〈잇다〉 시리즈의 물감과 시멘트 그리고 메시의 어울림은 가시적인 형상의 묘사에 중점을 두진 않는다. 오히려 미완이자 존재의 양상이 분분한 바탕에서 한층 한층 성립되는 미감을 발견해 가며 생성의 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간의 도전과 진화로 도체와 부도체 사이를 오가는 신물질이 탄생한 것처럼 작가 또한 도전적인 경로를 거쳐 감각적 진화로 나아가고 있다. 안충국의 화면은 기성의 안정적인 기반에 안주하지 않고 평범 이상의 소진 혹은 해체 이후에 가능한 폭넓은 생성의 성격을 지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새로운 페인팅이 발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근원과 본질 그리고 그것의 성질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작가의 화면 또한 근원과 경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위해 다양한 움직임을 수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대형작 〈잇다〉에선 경쾌한 푸른 바탕에 물감의 분주한 움직임과 동의 부식자국 그리고 하얀 시멘트의 굵고 강력한 횡적 전진을 볼 수 있다. 쏘아지는 액체처럼 경계를 떠나 경계 바깥의 삶을 향해, 삶이라는 깊고 다양한 울림을 향해 전진하는 듯한 큰 에너지를 품고 있다. 작가 또한 자신 외부의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감각하고 있다. 스스로가 영감이 되었던 시기에서 나아가 보다 자유로운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화면들은 비가시적인 영역들을 크고 깊게, 넓고 짙게 바라보기 위한 행위이자 미지의 영역을 향한 발돋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행보가 보다 풍부한 존재에 대한 해석에 이를 수 있다면 그의 표현 또한 현재의 지향성을 넘어 또다른 지향성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성(物性)으로 쓴 자서전: 안충국 작가론

                                                                                                                                                            평론 2025. 06. 17. 최경준

1.서론: 굴레를 벗고, 새로운 이름으로

한 작가가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을 목도하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다. 안충국 작가의 개인전 《잇다/LINE》는 바로 그 경이로운 순간의 기록과 같다. 이번 전시는 과거 작업의 단순한 연장선이 아니라, ‘탈북화가’라는 외부의 시선과 스스로를 옭아매던 규정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작가 안충국’으로서 내쉬는 첫 숨이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이는 마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세상”을 마주하는 연약하지만 단단한 결의가 느껴지는 도약이다.

그동안 ‘탈북화가’라는 수식어는 그의 독특한 배경을 설명하는 꼬리표인 동시에 그의 예술 세계를 한정하는 굴레였다. “당신네는 북한이라는 거 빼면은 내세울 게 뭐 있냐”는 무례한 질문에 상처받았던 경험은 그가 넘어야 할 경계가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제목 ‘잇다’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와 잇는 것을 넘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온 자가 앞으로 나아갈 미래와 자신을,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관객을 잇는 능동적인 선언으로 읽힌다.

2.상징에서 감각으로: 예술적 언어의 진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작가가 구사하는 예술적 언어의 전환이다. 그의 초기 작업을 지배했던 ‘문’, ‘달’, ‘집’과 같은 구체적인 상징들은 이제 화면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순수한 색과 선, 면이 채운다. 과거 그의 작품에서 ‘원(圓)’으로 표현된 달은 어두웠던 고향의 밤길을 밝혀주던 ‘조명’과 같은 구체적 기억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상징들은 그의 서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였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의 감상을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라는 틀 안에 가두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잇다》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더 이상 과거를 재현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빈 캔버스 앞에서 “그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고 “이거보다 어떻게 더 나은 행위를 해야 될지”를 고뇌하며, 감각 그 자체를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예술의 무게중심이 ‘무엇을’ 그렸는가에서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로 이동한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색채의 사용은 그의 내면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과거 어둡고 무거운 색감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경쾌하기를 원하는” 그의 바람처럼 밝고 다채로운 색들이 등장한다. 이는 배우자와의 안정된 삶 속에서 찾은 정서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트렌드가 아닌 “나와 맞는 색”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색은 이제 특정 대상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작가의 현재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이자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관객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안 어려웠으면 좋겠”고, 관객들이 보물찾기처럼 정답을 찾기보다 “그냥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는 관객에게 작가의 배경지식을 학습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고, 작품 앞에서 오롯이 자신의 감각과 마주할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당신이 바라보는 그 시선도 존경합니다”라는 그의 말은, 해석의 주권을 관객에게 온전히 넘겨주는 현대미술의 가장 열린 태도와 맞닿아 있다.

3.물성(物性)의 재발견: 감각을 입은 재료들의 속삭임

과거의 강렬하고 거친 감정의 서사로부터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해, 작가는 상처와 기억을 상징했던 철과 못을 배제했다. 그가 “너무 강하고 거칠다”고 느꼈던 재료들이 떠난 자리에는, 이제 새로운 감각의 옷을 입은 물성들이 들어선다. 이는 묵직한 과거의 언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현재의 경쾌한 감성으로 번역해내는 섬세한 과정에 가깝다.

그 중심에는 작가와 가장 깊이 교감하는 재료, 시멘트가 있다. 시멘트는 더 이상 작가의 과거와 동일시되는 무거운 분신이 아니다. 물과 만나 굳어지며 예측 불가능한 균열과 질감을 만들어내는 시멘트의 표면은, 이제 작가의 새로운 감정을 담아내는 다정한 캔버스가 된다. 특히 이번 신작에서 보이는 파란 시멘트의 등장은 놀랍다. 거칠고 투박한 재료의 대명사였던 시멘트는 작가의 손길 아래, 차분하고 명상적인 푸른빛을 머금으며 완전히 새로운 표정을 띤다.

구리와 동(銅)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작가는 동이 부식되며 발현되는 변화무쌍한 색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를 “물감이 할 수 없는 컬러”라 칭하며, 인위적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의 연금술이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결과물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재료의 자율성에 자신을 맡긴다는 점이다. 그 결과, 차가운 금속의 표면 위에는 민트색 꽃이 피어나듯 부드럽고 따스한 색감이 스며든다. 이는 재료와 감정 사이의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는 순간이며, 관객에게 화면 속 숨은 그림을 찾듯 색의 변화를 따라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물망의 사용 역시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창작의 기쁨을 보여준다. 본래 시멘트의 접착력을 위한 기능적 재료였던 망은, 이제 실패의 흔적이자 우연의 드로잉으로 화면에 남는다. 때로는 여린 핑크빛을 띠며 드러나는 망의 흔적들은, 마치 피부 아래 비치는 실핏줄처럼 작품에 내밀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처럼 안충국 작가는 물성의 언어가 지닌 진입장벽을 낮추고, 그 위에 감각적인 색과 질감을 입혀 관객이 호기심을 갖고 다가올 수 있는 상상의 접점을 마련한다.

4.결론: ‘잇다’의 역설, 그리고 광대한 가능성

결국 전시의 제목인 ‘잇다’는 하나의 아름다운 역설을 품고 있다. 작가는 진정으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관객과 연결되기 위해 과거와의 의식적인 ‘단절’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무게를 현재의 언어로 승화시키는 고차원적인 연결이다.

차가운 시멘트, 단단한 금속이라는 묵직한 재료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경쾌하고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 이것이 ‘작가 안충국’이 도달한 새로운 예술적 성취다. 거친 시멘트의 물성은 차분한 푸른빛으로, 금속의 부식은 따스한 민트색으로, 기능적인 그물망은 섬세한 핑크빛 드로잉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물성의 무게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질료 위에서 다채로운 감각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이 과감한 변주를 통해 그는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 재료의 속삭임, 그리고 관객의 시선과 깊이 연결된다. 스스로의 현재를 두고 “10%도 나왔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의 할 그림의 양이나 능력으로 봤을 때는 아직 세 발의 피”라고 그는 겸손하게 답했다. 이 ‘10퍼센트’라는 수치는 결코 부족함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가 바라보는 예술적 지평이 얼마나 광대하며, “앞으로도 계속 변화가 되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잇다》는 안충국이라는 작가의 여정에서 하나의 도착점이 아니라,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내디딘 새로운 출발점이다. 예술계는 그가 이 단단한 토대 위에 어떤 세계를 쌓아 올릴지,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평론 글

An Chungguk 안충국

​The universe of An Chungguk, nourished by an atypical life path, is filled with reflections that are both personal and somehow can become equally universal. There is something cathartic in the artist’s approach, which seems to be trying through research of materials to answer questions that accompany his daily life and trouble him. Deep questions that each of us may face one day.

 

"What path should I take in life? “Who am I in this world?” His works then appear as sketches of answers to his intuitions, worries, and presentiments. A way for the artist to impose himself face to face with his story and to compel himself to engage in an introspective effort that he shares generously with the public. An invitation to a collective reflection on the place of our memories in our lives, the form they take in our actions, and for the artist, in art.

 

An Chungguk, born in a small village in the province of Hamgyong, has been drawing and exploring subjects of painting since he was 10 years old. He now composes his paintings with unfamiliar materials such as cement, mesh, or tacks, which he then allows to mix freely with the traditional softer materials of painting. This encounter of unusual materials, where hazard plays a large role on the canvas, offers dense stories and a singular result.By looking more closely, you can see the blue of the sky, the green of nature, and the pink of optimism escaping from these ground materials. Delicate beams of color that, in the chaos of the artist's reflections, intersect and give way to a sense of hope and positivity.

 

A crossing of the night towards a dazzling light. And if we were to summarize the work of Chungguk An, we could first speak of a work where the essence of his deep thoughts seeks to express themselves freely and to engage universally.

-Lisa Lebel (Art Curator)-​ 2024 -English

안충국 An ChungGuk

비범한 삶의 여정 속에서 성장 한 안충국의 예술 세계는 매우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으로도 다가오는 성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작업 방식에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깃들어 있으며, 이는 작가가 일상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따라다니고 괴롭히는 질문들에, 재료를 통한 탐구로 답하려는 시도처럼 보입니다. 그 질문들은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맞닥뜨리게 될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생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이 세상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의 작업은 이러한 직관과 불안, 예감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내면을 탐구할 것을 요구하며, 그 과정을 관객과 너그럽게 나눕니다. 이는 곧 우리 삶 속에서 기억의 자리가 어디쯤인가, 그것이 우리의 행동 속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가를 함께 성찰해보자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 그것은 곧 ‘예술’이라는 형태로 구현됩니다.

함경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안충국은 열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예술의 세계를 탐구해왔습니다. 그는 이제 시멘트, 철망, 압정 등 낯선 재료들과 전통적인 회화 재료들을 결합하여 작업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료들이 서로 자유롭게 섞이고 충돌하도록 두며, 그 과정 속에서 우연이 큰 역할을 하게 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화면 위에는 밀도 높은 이야기와 독특한 결과물이 나타납니다.

그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친 재료들 사이로 하늘의 푸름, 자연의 녹색, 낙관의 분홍빛이 스며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내면적 혼란 속에서도 이러한 색채의 섬세한 빛줄기들은 교차하며, 결국 희망과 긍정의 감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엿보게 합니다.

마치 어둠을 지나 찬란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처럼.
안충국의 작업을 요약하자면, 그것은 깊은 사유의 본질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궁극적으로는 보편성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예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리사 르벨 (큐레이터), 2024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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